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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칼럼, 묵상, 기도, 기독교상식 )

끝이 아름다운 사람

by 무익한 종 2026.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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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무엘상 31장 1~6절
핵심 말씀: 사무엘상 31장 4절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출발이 좋았다고 반드시 마지막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등산도 정상에 올라갔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산행이 끝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달려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마지막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시작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는 은혜도 경험했습니다. 처음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는 자신을 작게 여길 줄 아는 겸손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사울과 가룟 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시작은 좋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배반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울도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사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울의 인생이 무너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사울의 첫 번째 중요한 불순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는 제사장이 주관해야 했습니다.

사무엘이 정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은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여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사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무엘상 13장 11절

 

사울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 왕으로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두었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들을 남겼습니다.

사무엘이 그의 불순종을 책망하자 사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상 15장 24절

 

사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첫 번째 불순종에서는 백성들이 자신에게서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두 번째 불순종에서는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사울은 죽는 순간까지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사울은 무기를 든 부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이 어떻게 보일 지를 더 걱정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체면과 평판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를 인정해 주는지, 내 체면과 지위가 유지되는지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타협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비난받지 않기 위해 진리를 숨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뻐하실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젊었을 때는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두 가지를 크게 착각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합니다.
둘째, 죽음의 순간에 자기 뜻대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도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도 기도할 수 있고, 지금 예배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지막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아름다운 마지막을 만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울의 곁에는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약 3년 동안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기적을 보았지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가까이 있다고 자동으로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반드시 믿음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며, 설교를 많이 들었다고 반드시 삶이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은 말씀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이 우리 삶에 유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결부되어야 합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줄타기 곡예사 찰스 블론딘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줄을 걸고 여러 차례 건넌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관중들에게 수레를 밀고도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관중들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믿습니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블론딘이 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수레에 타겠습니까?”

순간 관중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은 블론딘의 능력을 머리로는 인정했지만, 자신의 생명을 맡길 만큼 신뢰하지는 못했습니다. 입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자기 인생을 맡기는 믿음은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교회 강단뿐 아니라 텔레비전,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의 삶에는 말씀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을까요?

말씀을 들으며 고개는 끄덕이지만 그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재미와 호기심으로 듣고, 교양 강좌나 좋은 이야기 정도로만 듣기 때문입니다.

같은 비가 내려도 어떤 땅에서는 열매가 자라고 어떤 땅에서는 물이 그대로 흘러가 버립니다. 차이는 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상태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말씀을 들어도 결과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저 말씀은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이야기구나”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이 말씀은 바로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제 생각과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고,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본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말씀이라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내리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인생의 마지막을 결정합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화려했던 시작과 달리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십시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를 먼저 물으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이 말씀은 바로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제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바울은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장 7절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생 주님을 위해 살다가 믿음을 지키며 주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시작보다 끝이 더욱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오늘도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더 의식하며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씀에 불순종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를 먼저 묻게 하옵소서.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많이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시고,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켜 순종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돌리지 말고, 오늘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만 화려하고 마지막에는 무너지는 믿음이 되지 않게 하시며,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매일의 작은 순종을 통해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하게 하시고, 생의 마지막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시작보다 끝이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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