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욥기 1장 8~12절, 20~22절
중심 말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들어가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의 변화에 끌려다니고,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를 좇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여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길에 들어서고, 결국 깊은 후회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붙들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영적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이 주도권을 사탄에게 내어 주면 환경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고, 시험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오늘 욥기 1장의 말씀을 통하여 사탄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영적 주도권을 굳게 붙들고 승리할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탄은 우리의 신앙을 ‘거래’로 만들려 합니다
욥기 전체에서 사탄은 한 가지 주장을 일관되게 펼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다 이유와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가리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사탄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섬긴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주시고, 재산을 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시며 울타리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그 이유가 사라지면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고 원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시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찾아옵니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고, 자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면 기뻐합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잘되고, 재산이 늘어나면 감사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마땅히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사의 조건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일이 풀리지 않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건강을 잃었을 때 기쁨과 감사뿐 아니라 기도와 예배까지 사라진다면 사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거래적인 신앙으로 끌고 갑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했으니 하나님도 이만큼 응답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봉사했으니 이 일은 반드시 잘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노력한 만큼 받고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 거래 방식에 익숙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도 자꾸 거래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래적인 순종이 있는 곳에는 참된 은혜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만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사탄은 바로 그 이유를 건드립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조건을 제거함으로써 언제든 우리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원하는 때에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낙심하게도 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삶의 영적 주도권은 사탄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주도권을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주도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두 가지 영적 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2. 첫 번째 무기: 조건을 뛰어넘는 절대 감사
욥에게 어느 날 갑작스러운 재난이 몰려왔습니다. 전 재산을 잃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어 육체의 건강까지 무너졌습니다. 더욱이 욥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욥기 1장을 읽으며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화를 알지만, 욥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욥기 1장 20~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이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그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속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욥은 아프지 않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 않은 척 억지로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아팠고, 슬펐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찢어진 겉옷을 입고 눈물 젖은 얼굴로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것이 절대 감사입니다.
절대 감사란 아픈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눈물이 흐르는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것을 모두 빼앗으면 하나님을 향한 욥의 감사와 믿음도 함께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사탄의 논리는 무너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탄은 “이유가 있으니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필요가 있으니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좋은 일이 있으니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환경에 상관없이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모든 일 가운데 감사할 때 영적 주도권은 사탄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조건 없는 감사는 사탄의 시험을 무력하게 만들고 빼앗겼던 신앙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절대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사탄에게 흔들리지 마십시오. 주도권을 내어 주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의 무릎을 꿇으시기를 바랍니다.
3. 두 번째 무기: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지키는 것
많은 사람은 욥기의 주제를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욥기 1장부터 42장까지 읽어 보면,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의 진정한 주제는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고난은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길에 놓인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우리는 고난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단지 우리의 재산이나 건강을 빼앗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 1장 22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이후에 많이 울었고, 탄식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픔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았습니다. 이것이 원망과 탄식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원망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지만, 탄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는 것입니다. 원망은 관계를 끊지만, 탄식과 부르짖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 줍니다.
마침내 욥은 고난의 긴 골짜기를 지나 욥기 42장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 이전의 욥도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하나님은 ‘귀로 들어 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고난이라는 깊은 골짜기를 통과한 후 욥은 ‘눈으로 뵙는 하나님’, 곧 인격적으로 깊이 만난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고난 그 자체만 남는다면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여 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알던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된다면, 그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사탄의 공격은 힘을 잃고 영적 주도권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그의 실패부터 추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가장 먼저 확인하신 것은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6)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자 베드로의 실패는 더 이상 그의 인생을 붙드는 사슬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영적 싸움은 ‘내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끝까지 믿는 싸움’입니다. 사탄은 고난 중에 속삭입니다. “그런 일을 겪는데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고 믿느냐?” 그러나 그 거짓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잃은 그 밤에도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무너져 울던 그 순간에도 주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십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한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영적 주도권을 빼앗아 시험과 고난 속에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때 반드시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조건을 뛰어넘는 절대 감사입니다.
둘째, 결코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탄은 묻습니다.
“네가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한 대답이 있습니다.
“나는 까닭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자격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까닭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대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힘과 사랑의 힘으로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무력하게 하고, 신앙의 주도권을 굳게 붙들어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환경에 흔들리고 사람의 말과 평가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왔던 우리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이 주님을 예배하게 하시며, 거래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조건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고난과 시험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며 더욱 깊이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영적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며, 사탄의 어떠한 시험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감사의 힘과 사랑의 힘으로 끝까지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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