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시편 73편 16~28절
핵심 말씀: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으로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길을 몰라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검색하면 되고, 필요한 물건과 먹고 싶은 음식도 손가락으로 몇 번만 누르면 집 앞까지 배달됩니다.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되었고, 의학과 과학기술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치료하기 어려웠던 질병들이 점점 정복되고 있으며, 우리가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편리해졌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해진 것은 아닙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과학은 인간에게 더 큰 능력을 주었지만, 인간의 마음에 있는 탐욕과 죄까지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가 있어도 운전자가 술에 취하면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탐욕과 부정에 물들어 있다면 오히려 누군가를 해칠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와 탐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여전히 갈등과 불안과 눈물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1.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 마음에도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힘들고, 악한 사람은 오히려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며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도 같은 질문을 품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믿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 시편 73:2~3
아삽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삶이 너무나 평안하고 형통해 보였습니다. 돈도 많고 건강하며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돌아보니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썼으며, 정직하게 살고 죄를 멀리하려 했지만 삶에는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 시편 73:13
“내가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온 것이 무슨 소용인가? 정직하게 살며 손해를 감수한 것이 모두 헛된 일인가?”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습니다. 헌금하고 봉사하며 누군가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믿음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다. 더 나아가면 지금까지 지켜 온 믿음까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삽도 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 더 커졌습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 시편 73:16
그런데 17절에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 시편 73:17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아삽의 시선이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자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삽에게 세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성소에 들어가면 인생의 끝이 보입니다
첫째, 성소에 들어가면 인생의 끝이 보입니다.
여기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잘 닦인 8차선 고속도로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느 길이 더 좋은 길이겠습니까?
눈앞의 모습만 보면 당연히 8차선 고속도로가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 아닙니다. 반대로 비포장도로가 험하고 불편하더라도 그 길이 생명과 평안의 목적지로 이어진다면 그 길이 좋은 길입니다.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그 길이 좋은 길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길의 상태만이 아니라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삽은 그동안 자신이 걷는 길의 어려움만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힘든가?”
“악인은 왜 저렇게 넓고 편안한 길을 달리는가?”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자 그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 시편 73:18~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오늘의 현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길의 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편안하다고 반드시 복된 길은 아닙니다. 지금 힘들고 울퉁불퉁하다고 반드시 잘못된 길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나 편안한가 가 아니라 내가 걷는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비록 지금의 믿음생활이 힘들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3. 성소에 들어가면 내가 보입니다
둘째, 성소에 들어가면 나 자신이 보입니다.
아삽의 시선은 처음에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 누가 더 편안하게 사는지, 왜 악인이 잘되는지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자 다른 사람을 향하던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 시편 73:21~22
아삽은 악인의 죄를 바라보다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질투와 원망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형통함만 바라보다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불평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배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은혜입니다. 참된 예배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얼마나 잘사는가?”
“저 가정의 자녀들은 얼마나 잘되었는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인정받는가?”
“왜 저 사람의 인생은 잘 풀리는가?”
남만 바라보고 비교하다 보면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다른 사람에게 향했던 눈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울처럼 내 마음을 비추어 줍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 보다 내 안의 교만과 욕심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형통보다 내가 받은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의 은혜입니다.
4. 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셋째, 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 시편 73:23
아삽은 세상 속에서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정직하게 사는 길이 외롭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자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오른손을 붙들고 계셨구나.”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지 않으셨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온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내가 힘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놓지 않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바라본 뒤 완전히 새로운 고백을 드립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오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 시편 73:25~26
처음에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자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참된 복은 많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남보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반석과 영원한 분깃이 되어 주시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5. 말씀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아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관찰했다고 합니다. 한 집단은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에서 놀게 하고, 다른 집단은 울타리가 없는 넓은 운동장에서 놀게 했습니다.
울타리가 있는 운동장의 아이들은 운동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울타리 가까이까지 자유롭게 놀았습니다. 반면 울타리가 없는 운동장의 아이들은 넓은 공간이 주어졌음에도 운동장 중앙에 모여 멀리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울타리는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의 울타리를 주시는 것도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만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십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참된 복입니다.
6. 예배와 공동체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왜 성전 중심,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물론 집에서도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신앙은 혼자만의 생활로 온전히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공급받고 함께 찬양하며 예배할 때 우리의 믿음이 바로 세워집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 위로받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붙들어 줄 때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목장 안에 있는 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목장을 벗어나면 자유롭게 보일 수 있지만 길을 잃기 쉽고 사나운 짐승의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목장 안에 있을 때 목자의 돌봄을 받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어떤 마법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곳에 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한 주간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눈이 흐려집니다. 돈이 너무 크게 보이고, 삶의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말은 크게 들리고 하나님은 점점 작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전에 나와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서면 흐려졌던 눈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이 문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시는구나.”
“내가 걷는 이 길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이것이 아삽이 성소에서 경험한 은혜입니다.
맺는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흔들릴수록 성전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삶이 힘들수록 예배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마음이 무너질수록 공동체에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말씀을 들으십시오. 찬송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생의 끝이 보입니다.
나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삽과 함께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시편 73:28
세상이 말하는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참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드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눈앞의 현실과 다른 사람의 형통만 바라보며 원망하고 흔들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인생의 끝을 바라보게 하시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며, 언제나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삶이 힘들수록 예배를 더욱 사모하게 하시고, 마음이 무너질수록 교회 공동체 안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세상의 성공과 편안함보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게 하시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지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길을 잃은 사람이 생명의 길을 찾으며, 상한 마음이 위로와 회복을 얻는 은혜의 성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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