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열왕기상 19장 1~8절, 18절
-. 핵심 말씀 :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 19: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몸이 아프면 우리는 병원에 갑니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고, 뼈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찾아가며,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갑니다. 그런데 누군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이렇게 대답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
“좋은 생각만 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야?”
“믿음이 약해서 그런 거야.”
물론 기도는 중요합니다. 믿음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깊은 우울감과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려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고, 말씀을 읽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으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약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책망이 아니라 돌봄이며, 정죄가 아니라 치료이고, 충고보다 따뜻한 손길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엘리야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맞섰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고, 3년 6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다시 내리도록 간절히 기도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해 보였던 엘리야가 오늘 본문에서는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이제는 충분합니다. 차라리 제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엘리야는 육체적으로도 지쳤고, 정신적으로도 소진되었으며, 깊은 고독과 절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치고 쓰러진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도 지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큰 승리를 경험한 뒤에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실패했을 때 사람이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실패했을 때만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큰일을 이루고 난 다음에도 공허함이 찾아올 수 있고, 오랫동안 긴장하며 달려온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무기력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부모가 심하게 지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을 모두 결혼시킨 뒤 삶의 목적을 잃은 듯한 공허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쉬지 못하고 달려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2절에서도 “나만 홀로 남았다”고 말하고, 19장 10절과 14절에서도 “오직 나만 남았다”고 호소합니다. 엘리야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사역의 어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독감이었습니다.
사람은 일이 많아서 지치기도 하지만,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더 깊이 지칩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있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끼면 마음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잠시 가라앉는 정도가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 행동뿐 아니라 수면과 식욕, 집중력과 신체 활동 등 일상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질환입니다. 자동차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면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도 완전히 소진되면 의지만으로 일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방전된 자동차를 향해 “왜 시동을 걸지 못하느냐”고 꾸짖는다고 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충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히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 차려라”라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쉬고 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고혈압과 당뇨에 걸리고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좋은 사람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지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질병을 함부로 신앙과 연결하여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사람 곁에 머물며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많이 힘드셨지요.”
“여기까지 견뎌 온 것만으로도 잘하셨습니다.”
“이제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됩니다.”
2. 하나님은 지친 사람을 먼저 돌보십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엘리야야, 네 믿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빨리 일어나 정신 차려라.”
“어서 다시 사명을 감당하러 가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를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엘리야를 쉬게 하신 것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5)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억지로 깨워 기도부터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잠을 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어루만지게 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엘리야가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먹고 마신 후 다시 누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빨리 사명을 감당하라”고 재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시고 또 먹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재우시고, 먹이시고, 어루만지셨습니다. 다시 재우시고, 다시 먹이시며 충분히 돌보셨습니다. 이것이 지친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무엇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눈물을 삼켜 왔는지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잘 자고, 잘 먹고, 잠시 일을 내려놓고, 병원에서 진료받고, 상담을 받고, 가족과 교회의 돌봄을 받는 것은 믿음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복의 방법입니다.
기도하면서 치료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면서 상담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사와 상담자,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도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우리 역시 지친 사람을 만났을 때 너무 빨리 충고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안아 주고, 밥 한 끼를 함께 먹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다그치기보다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해야 합니다.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기보다 “천천히 회복해도 괜찮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처 입은 사람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조용히 다가가 어루만지고, 먹이며, 쉬게 하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3.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엘리야는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꼈습니다.
깊은 우울감에 빠지면 자신이 혼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질 거야.”
“내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냥 내가 혼자 참고 견뎌야 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엘리야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칠천 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또한 엘리야의 뒤를 이어 사명을 감당할 엘리사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엘리야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함께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짐을 혼자 지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주셔서 함께 짐을 나누게 하셨고, 교회를 주셔서 서로의 아픔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교회는 서로의 짐을 함께 들어 주는 공동체입니다.
“많이 무거우시지요? 제가 함께 들겠습니다.”
“혼자 울지 마십시오.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혼자 견디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꼭 대단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손을 잡아 주고, 밥 한 끼를 함께 먹고, 병원에 동행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예전에 좋아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으며, 잠과 식욕이 무너지고 일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혼자 짊어지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가족에게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신뢰할 수 있는 성도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십시오. 목회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살아가기 위한 용기이며, 회복을 향한 믿음의 첫걸음입니다.
맺는말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로뎀나무는 엘리야의 마지막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까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한 번에 회복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잠을 자게 하셨고, 먹이셨으며, 다시 재우고 다시 먹이셨습니다. 그의 몸과 마음을 돌보시고 말씀을 들려주셨으며, 함께할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지치고 쓰러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꾸짖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것밖에 하지 못했느냐”고 책망하기 위해 오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이 힘들었구나.”
“여기까지 견뎌 온 것만으로도 잘했다.”
“이제 혼자 짊어지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 교회, 울고 싶은 사람이 마음껏 울 수 있는 교회,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믿음 없다고 정죄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저는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할 때, “혼자 짊어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 들겠습니다”라고 손을 내미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 가운데 한 걸음씩 회복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육체적으로 지치고 마음이 무너져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많이 힘들었구나. 여기까지 견뎌 온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에게 평안한 잠을 주시고, 기쁨을 잃은 이에게 소망을 주시며, 살아갈 힘을 잃은 이에게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필요한 의사와 상담자를 만나게 하시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치료받고, 말씀을 붙들면서 상담받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사람의 도움을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우리 조치원성결교회가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지친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누군가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할 때 따뜻하게 손 내밀어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 걸음씩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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